만화 같은 사사社史 기록으로 말하기

벌써 25년이 됐다. 그동안 거친 사사편찬팀이 20여 개에 이른다. 비록 매번 회사를 옮겨 다니지만 나로선 늘 한결 같은 일이다. 회사원이 이 정도로 긴 세월을 헌신하면 최소한 근속상이라도 받겠지만 사사작가는 그저 매번 지나가는 계약직 직원일 뿐이다. 간혹 회사에 공헌한 피고용인으로 대우받을 때도 있지만 지극히 일시적이다. 그래도 계속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직도 부족한 게 많고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에 근무하다가 종근당 홍보임원이 된 노기자가 『종근당 스케치』를 다 읽었다면서 물었다. 유작가님 그런데 사사를 이렇게 써도 되는 겁니까? 그는 기존의 전통에서 한참 벗어난 '종근당 스케치'라는 타이틀과 구성, 가벼운 문체 등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나마 아무튼 재미있게 다 읽었다, 고 말해주기에 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종근당 스케치』뿐만 아니라 제가 쓴 사사는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세요. 기존의 다른 사사들과는 많이 다르다면서요. 하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놓고 안 읽히는 사사가 너무 많거든요. 어쩌면 다른 사사들과 다르기 때문에 제가 쓴 사사가 읽히는 건지도 모르거든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내심 걱정이 많다. 과연 내가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자충수를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 번에는 이런 말도 들었다. 사실 이전에 나온 우리 회사 20년사는 거의 읽지 않았어요. 유선생님이 작업한 이번 25년사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어요. 하지만 구성과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라 좀 걱정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안 읽히든 말든 나도 그냥 일반화된 사사로 되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면 언젠가 K팝스타 심사위원들이 나눈 대화(메모)를 꺼내 본다.

'처음부터 일반적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일단 상투적이 아니라 좋았어요.'
'이 세상은 한 끗 차인데 뭔가 남들과 다른 한 끗이 있어요.'
'상대방에 맞추지 않고 자기에게 맞춰 부르잖아요.'
'이 세상에 똑같은 인간이 없듯이 자기만의 것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옛 자료나 데이터를 찾기 위해 메모리칩이나 인터넷망을 뒤지지만 이전에는 마스크가 없으면 한 시간도 못 버티는 먼지 쌓인 문서창고를 뒤지곤 했다. 흔히 생각하는 머리를 주로 사용하는 '화이트 칼라'(White-Collar)의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내가 종사하는 사사산업이 문화산업에서 그다지 중요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나는 여기에도 큰 유감이 없다. 사사전문 비평가들이 없어 천만다행이지만 어떤 말로 폄하당해도 할말 없는 수준의 사사가 적지 않다. 이는 사사 편집(편찬) 작업을 대행한 작가나 기획사에도 책임이 있지만 꽤 많은 비용을 대고 자료를 지원하는 회사측에도 책임이 있다. 사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사의 진짜 가치와 활용도를 잘 모르면서 이것저것 요구하고 간섭하는 회사측 임직원들의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가끔 만화 『미생: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를 책장에서 꺼내 다시 읽는다. 윤태호 작가는 '미생'이라는 단어 하나로 바둑이 갖고 있는 특성과 직장인의 삶을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나도 기회가 되면 '미생' 같은 절묘한 타이틀과 함께 만화처럼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사를 만들 생각이다. 일단 읽혀야 역사의 교훈이든 뭐든 전달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꿈꾸는 롤모델 전문가의 메모법

나는 달리면서도 메모한다. 달릴 때는 휴대폰도, 메모지도 없다. 일하기 위해 달리고 달리기 위해 일한다, 고 떠들고 다니지만 실은 일과 달리기를 구분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달리기만 하면 메모할 게 막 생각난다. 너무 아까운 아이디어가 한꺼번에 쏟아질 때는 차라리 머리를 쓰레기통 안에 처박고 싶다. 어차피 돌아가면 다 사라질 테니. 책상 앞으로 돌아오면 간신히 한두 개는 건진다. 그거라도 건지려고 또 달린다.

30년 지기가 있다. 대학교 신방과 동기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신문사 시험을 쳤다. 친구는 붙고 나는 떨어졌다. 그후 나는 30년의 6분의 5를 프리랜서로 살고 있고, 친구는 30년간 한 신문사에서 근무했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만나, 나는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따로 빼놓은 음악CD를 친구에게 주고 친구는 송호근 선생이 쓴 『가보지 않은 길: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를 나에게 주었다. 서로에게 효용가치가 더 나은 것으로 물물교환을 한 셈이다.

친구는 대학 다닐 때부터 오디오에 꽂혀 LP와 CD를 모았다. 사진(사진기자였으니까), 음악 외에도 미술, 주식, 커피 등 폼나게 뜨는 업종에 관심이 많았고 이것저것 사업에도 투자했다(대부분 까먹었지만). 그러면서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대책없이 살아간다고 걱정해 주었다. 만날 때마다 나에게 전망 좋은 사업 아이템과 새 직업을 추천하곤 했다. 그래도 끄떡하지 않고 포스트잇만 갖고 돌아다니는 나를 답답하고 아날로그적이라고 놀리던 친구가 요샌 만날 때마다 내가 부럽다고 한다. 그런 친구에게 내가 꿈꾸는 '롤모델'이 '영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1930년생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70대에 연출한 <미스틱 리버>(2003년 73세),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년 75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년 76세), <아버지의 깃발>(2007년 77세), <체인질링>(2008년 78세), <그랜 토리노>(2009년 79세),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년 84세)는 대부분 흥행에도 성공했다.

'나는 그를 보며 나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영화배우 하정우 씨가 평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북 트레일러(Book Trailer, 새 책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한 말이다. <롤러코스트>(2013)와 <허삼관>(2015)을 연출한 하정우 씨가 '살아 있는 전설'을 롤모델로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도 가끔 엉뚱한 계산을 한다. 나도 6,70대에도 계속 일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인생 후반기 작품이 더 강한 설득력과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까? 분수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꿈을 꾸는 순간만이라도 무척 즐겁다.

말만 전문가인 사람들 전문가의 메모법

학력과 경력보다 저서로 전문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룰이 자리잡고 있다. 학력과 경력의 총집합이 저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화가, 작곡가, 과학자... 같은 굳이 저서를 안 내도 되는 전문가들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엮은 책으로 대중과 교감하며 전문성을 한껏 높인다.

내 주변에도 한 분야에서 십수 년씩 일한 전문가들이 많다. 그 경험과 지식은 충분하지만 그것을 책으로 묶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겠다고 한 다짐은 흐지부지되고 있다. 생각만 하고 망설이는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다작을 하는 A작가가 있었는데 그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B비평가가 그의 작품이 스타일 변덕이 심하고 구성도 탄탄하지 않고 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피상적이라는 등 혹평을 했다. 한 기자가 A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하자, A의 어머니는 아마 B비평가를 의식한 듯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우리 아들은 계속 쓴답니다.'(『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우리 주변에는 남의 글을 비판하는 비평가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기 시작하면 꽤 괜찮은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남들의 평가가 두려워 쓰지 못한다.

'도예 시간에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선생님이 A그룹은 작품의 양만으로 평가하고, B그룹은 질로 평가하겠다고 했다. 평가 방식은 A그룹은 저울로 작품 무게를 달아 20킬로그램 이상은 A를 주고 15킬로그램 이상은 B를 주고 그 이하는 C를 주기로 했다. B그룹은 완벽한 작품만 'A'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좋은 작품은 모두 A그룹에서만 나왔다. A그룹 학생들이 일단 작품을 시작하여 점토를 뜯어 붙일 동안 B그룹 학생들은 머리만 굴리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위의 책)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 또는 전문가들은 일단 메모한다. 쉬지 않고 메모하여 '빈 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바구니가 차면 그들을 연결하여 작품을 생산한다. 

메모와 신발 전문가의 메모법


주로 어디서 작업하세요? 내가 인터뷰한 젊은 화가가 도리어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주로 돌아다니면서 작업해요. 커피숍에서, 지하철에서, 기차에서, 비행기에서, 어디서든 메모해요."

프랑스에서 온 그 화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쓴다'는 말은 한 번도 안하고 줄곧 '메모' 얘기만 했으니. 할 수 없이 설명을 추가했다.
"제가 하는 일이 미술의 모자이크 기법과 매우 흡사해요. 우리끼리 하는 말로는 '개떡같이 그러모아 찰떡같이 이어 붙이는' 일이거든요." 

나는 쉬지 않고 메모한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대화 중에도 눈치껏 메모한다. 화장실에선 휴대폰 메모앱을 사용한다. 가끔 아내로부터 변비 있느냐는 말을 듣지만 화장실에서 메모한다는 말은 절대 안한다. 안 그래도 그 놈의 메모 때문에 지겹다는 말을 듣고 산다. 뭔가 생각하다가 잠들면, 꿈에 해답 비슷한 게 나타난다. 그러면 일어나 메모하고 다시 잔다.

휴대폰 메모앱도 사용하고 종이 메모지도 사용한다. 종이 메모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영화관이나 연주회 같은 데선 아예 처음부터 포스트잇과 연필을 꺼내 놓는다. 인터뷰 할 때도 눈은 상대방을 보고 손바닥 위에 놓은 포스트잇이나 수첩에 메모한다. 메모는 나에게 신발과 같다 - 고 하면 아마 무슨 헛소리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강에서 와인 마시기 기록으로 말하기

일하면서 가끔, 931, 세상의 모든 음악, 다시듣기를 틀어놓는다. 일하다 말고, Google Play로 영화 <사이드웨이>를 봤다. 전기현 씨가 오프닝멘트에서 우리는 늘 최고의 순간을 꿈꾸며 기다리지만 정작 언제가 최고의 순간인지 모른다, 고 운을 뗀 뒤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최고의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을 마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와인 영화라기에 관심을 가졌다가 코미디 장르라기에 그냥 지나친 영화다. 집에서 가끔 아내와 아이들에게 놀림받지만. "코미디 장르는 안 좋아한다고 하고는 늘 가장 많이 웃는 건 아빠잖아." 나도 할말이 있다. 이 세상에 언행이 100% 일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어쨌든 요새 나는 앞뒤 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하늘에 맡기고, 일단 와인을 따고 마시는 행복한 순간을 실감하며, 또한 실천하며 산다. 이사오기 전에는 동네 헬스클럽에 다녔다. (미팅이 없는 날은) 오전에 일하다 말고 서둘러 헬스클럽에 갔다. 시간대별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나 성별, 운동기구 사용 취향 등이 다르다. 그래서 헬스클럽에 가는 시간이 대강 고정돼 있었다. 한창 진도가 나가는 일을 끊고 갈 때는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운동을 해도 되나, 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이사온 아파트는 금호역과 옥수역 사이에 있다. 네이버 길찾기를 찍으면 아파트와 금호역 그리고 옥수역의 거리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 동은 옥수역이 훨씬 더 가깝다. 아파트 단지 끝편의 유치원 쪽문을 이용하면 7-8분만에 옥수역에 닿는다. 옥수역 밑으로는 바로 한강으로 통하는 나들목이 있다. 그 덕에 이젠 정해진 운동시간이 없다. 마음껏 일하다가 살짝 지겨워지면 한강으로 나간다. 어떤 날은 뛰고,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탄다. 탁이가 타던 낡은 픽시 자전거 타이어를 교체했더니 생생 나간다. 한강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이사온 뒤로 거의 매일 와인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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