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아빠 기록으로 말하기

어제 이사 갈 집에 (나는 처음) 가봤다. 집주인 아주머니와 아내가 얘기할 동안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등돌리고 서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아내 말은 안 들렸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아! 네 인상만 좋으세요?"
아내가 무슨 말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농반진반으로. 농보다 진이 훨씬 더 많았을.

지금 집에 이사온 지 꼭 2년만이다. 내가 찾고 계약한 처음이자 마지막 집이다. 애들 학교 가까운 데라는 방향을 잡고 전화한 첫 번째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첫 번째 집이다. 딱 보는 순간 혹시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봐 아내 허락도 안 받고 미리 가계약을 했다. 동네가 조용하고 방이 네 개나 됐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바깥 작업실을 얼마 전에 없앤 터였다. 아이들도 둘 다 학교가 너무 가까워졌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재개발 찬반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사 오기 전까지 그런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동안 인상만 좋다는 말을 충분히 들을 정도로 살아왔다.

커피를 내려 책상 앞에 앉았다. 마지막 새벽이다. 그래도 이 집에서 애들 둘 다 졸업하고, 둘 다 취업에 성공했다. 큰놈은 취업 재수 1년반 만이다. 아내와 나는 아직도 꿈인가 생신가 한다. 작은애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회사들은 다 떨어지더니 안 될 거라고 생각한 큰회사에 덜컥 붙었다. 우리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이젠 아빠만 잘하면 돼." 요새 우리집 유행어다. 나도 아직 노력하고 있다.  




세시너의 훈수 기록으로 말하기

오랜만에 이웃 동네 목욕탕에 갔다. 우리 동네 목욕탕은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작고 아담한 일본식 목욕탕이었는데 동네가 재개발되니 어쩔 수 없이 하나둘 떠난다.

그동안 목욕탕에 가도 때는 밀지 않았다. 도마가 연상되는 판때기 위에 올라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별로였다. 하지만 탁이가 지난 가을에 드디어 취업에 성공한 뒤로는 같이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혼자 손 닿는 데까지만 해결하다가 등이 간지러워 할 수 없이 도마 위에 누웠다.

이웃 동네 목욕탕은 대형이다. 나는 목욕만 했기 때문에 다른 층은 가보지 않았지만, 24시간 영업에 온갖 시설을 갖추었다. 때미는 게 '세신洗身'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탕 입구에 대형 '세신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그냥) 세신 밑으로 웰빙 세신, 마사지+웰빙 세신.... 2단 메뉴판에 온갖 서비스가 죽 나열돼 있었다. 도마도 서너 개나 되고 세시너 아저씨들이 앉아 있는 공간도 따로 있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세시너가 쉬지 않고 말했다. 몸에 군살이 없네요. (아저씨 남의 몸을 스캐닝 하지 말고 그냥 세신만 해주세요.) 때가 많이 나오는 걸 보니 건강하시네요. (그건 어떤 원리인지 모르지만 때 안 민지 오래 되거든요.) 말이 좀 많으신 분이구나, 생각하고 눈도 감고 입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계속 말했다. 발뒤꿈치를 밀면서 말했다. 아! 부부 관계가 좋으시군요. 발뒤꿈치가 깨끗한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아저씨 제발 엉뚱한 말 좀 그만 하세요. 그건 분명 사실이 아니거든요.) 드디어 그는 본론을 말했다. 그냥 세신만 하지 말고 웰빙 세신을 하시죠. 운동이 부족한 분들은 마사지를 해줘야 혈액 순환이 잘 되거든요. (아저씨, 나는 지난 주 일요일에도 하프마라톤을 뛰었거든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살짝 걱정이 될 정도거든요.) 내가 끝까지 세신만 할 거라는 걸 눈치 챘는지 그제서야 입을 다물고 마무리를 해주었다.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뭔가 계속 걸렸다. 세시너나 나나 둘 다 남들이 잘 안하는 일을 하는 전문가인 셈이다. 그런데 그는 쉴 새 없이 자신을 홍보했다. 까딱했으면 순간적으로 그럼 웰빙 세신을 해주세요, 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계속 기다리기만 했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 둘 중 하나다. "아무개 고객님이시죠...." 이건 전화영업이다. "아무개 선생님이시죠..."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작업 의뢰가 들어왔다. 그래서 모르는 전화번호라도 꼭 받는다. 이렇게 기다리는 영업만 했는데, 세신 이후 계속 걸린다. 나도 좀더 적극적으로 나를 홍보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날로그로 살아가기 기록으로 말하기

30년 지기가 있다. 대학교 신방과 동기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신문사 시험을 쳤다. 친구는 붙고, 나는 떨어졌다. 그후 나는 25년의 5분의 4를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친구는 25년 근무한 신문사 마지막 출근을 오늘 내일 하고 있다.

며칠 전 광화문 성북동 다방(우리에게는 이 어감이 어울린다)에서 만났다. 나는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챙겨 놓은 음악CD를 친구에게 주고, 친구는 송호근 선생이 쓴 '가보지 않은 길: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를 주었다. 서로에게 효용가치가 더 나은 것으로 물물교환을 한 셈이다.

친구는 대학 다닐 때부터 오디오에 꽂혀 LP와 CD를 모았다. 사진(사진기자였으니까), 음악 외에도 미술, 주식, 커피 등 폼나게 뜨는 업종에 관심이 많았다. 신문사에 다니면서 주식투자, 광고업, 화랑업, IT업.... 등 이것저것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면서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대책없이 살아간다고 걱정해 주었다. 만날 때마다 세상에 부는 바람(변화) 얘기도 해주고, 미래를 전망하며, 그에 맞는 새 직업과 아이템을 추천하곤 했다. 하지만 직접 사사기획사를 차리거나, 대학원에 가거나, 외국에 나가거나 하라는 그의 조언은 나에게는 꿈같은 얘기들이었다. 나는 당장 코앞의 현실과 씨름하느라 고개를 들고 다른 유망 업종을 곁눈질할 여유가 없었다. 친구는 그런 내가 답답하고 아날로그적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 친구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사업 구상을 밝혔다. 사진과 책이 있는 음악다방. 그건 생맥주 한 잔 걸치고 가장 릴렉스한 상태에서, 욕망도 욕심도 다 내려놓았을 때 꿈꾸는 사업이다. 늘 멀리 바라보고 크게 구상하던 친구에게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형은 대단해. 그렇게 아날로그로 사는 데도...." 친구가 뜬금없이 띄워주었을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지독하게 아날로그로 살아 왔지. 늘 바람에 밀리며 허겁지겁 살아왔지만 그래도 내 배만큼은 내가 조종할 수 있었으니까."

  




 
      

1 2 3 4 5 6 7 8 9 10 다음

최근 포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