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쓰는법 기록으로 말하기

드디어 초고를 다 썼다. 엉망이지만 괜찮다. 원래 초고는 엉망이다. 초고를 읽으면서 아! 이런 걸 어떻게 책으로 내지! 그런 창피함과 자괴감을 대범하게 - 나는 근 20년이 걸려 간신히 대범해졌지만 - 받아들이지 않으면 책은 못 쓴다. 누구나 - 무슨 소리냐, 나는... 라고 해도 될 만한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 거치는 과정이다. 이번 원고의 임시 타이틀은 <반도체가 뭐고? - 호암의 마지막 꿈>이다.  

초고는 엉덩이 싸움이다. 그래서 초고를 쓰는 동안 다른 건 안하기로 다짐했었다. 이 기록노트도 그래서 멀리했다고 하면, 그건 순전히 핑계다. 아무 것도 안하니 쓸거리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동안 한 다른 일이라고는 꼭 필요한 업무 미팅 외에는 머리와 눈 식히기 - 한강에서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뿐이다.
   
달리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두어 시간이면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온다. 혼자 달릴 때는 거리로 달리지 않고 시간으로 달린다. 한 시간을 달리고, 유턴하여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출발지로 돌아온다. 더는 힘들어서 못 달리니 할 수 없이 책상 앞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자전거 타기다. 점점 타는 시간과 거리가 늘어난다. 책상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싶은 바람이자 경향이다.

그러다가 덜렁 버킷 리스트에 자전거로 해남 가기를 추가했다. 스스로 본성을 억누를 만한 미끼를 하나 던져준 거다. 책이 나온 후에 그렇게 하자, 며 스스로 달래고 어르면서 유턴하여 돌아오곤 했더니 엉망인 초고가 나왔다.  

     


한강에서 와인 마시기 기록으로 말하기

일하면서 가끔, 931, 세상의 모든 음악, 다시듣기를 틀어놓는다. 일하다 말고, Google Play로 영화 <사이드웨이>를 봤다. 전기현 씨가 오프닝멘트에서 우리는 늘 최고의 순간을 꿈꾸며 기다리지만 정작 언제가 최고의 순간인지 모른다, 고 운을 뗀 뒤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최고의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을 마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와인 영화라기에 관심을 가졌다가 코미디 장르라기에 그냥 지나친 영화다. 집에서 가끔 아내와 아이들에게 놀림받지만. "코미디 장르는 안 좋아한다고 하고는 늘 가장 많이 웃는 건 아빠잖아." 나도 할말이 있다. 이 세상에 언행이 100% 일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어쨌든 요새 나는 앞뒤 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하늘에 맡기고, 일단 와인을 따고 마시는 행복한 순간을 실감하며, 또한 실천하며 산다. 이사오기 전에는 동네 헬스클럽에 다녔다. (미팅이 없는 날은) 오전에 일하다 말고 서둘러 헬스클럽에 갔다. 시간대별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나 성별, 운동기구 사용 취향 등이 다르다. 그래서 헬스클럽에 가는 시간이 대강 고정돼 있었다. 한창 진도가 나가는 일을 끊고 갈 때는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운동을 해도 되나, 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이사온 아파트는 금호역과 옥수역 사이에 있다. 네이버 길찾기를 찍으면 아파트와 금호역 그리고 옥수역의 거리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 동은 옥수역이 훨씬 더 가깝다. 아파트 단지 끝편의 유치원 쪽문을 이용하면 7-8분만에 옥수역에 닿는다. 옥수역 밑으로는 바로 한강으로 통하는 나들목이 있다. 그 덕에 이젠 정해진 운동시간이 없다. 마음껏 일하다가 살짝 지겨워지면 한강으로 나간다. 어떤 날은 뛰고,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탄다. 탁이가 타던 낡은 픽시 자전거 타이어를 교체했더니 생생 나간다. 한강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이사온 뒤로 거의 매일 와인을 마신다.
    
 
 

노력하는 아빠 기록으로 말하기

어제 이사 갈 집에 (나는 처음) 가봤다. 집주인 아주머니와 아내가 얘기할 동안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등돌리고 서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아내 말은 안 들렸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아! 네 인상만 좋으세요?"
아내가 무슨 말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농반진반으로. 농보다 진이 훨씬 더 많았을.

지금 집에 이사온 지 꼭 2년만이다. 내가 찾고 계약한 처음이자 마지막 집이다. 애들 학교 가까운 데라는 방향을 잡고 전화한 첫 번째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첫 번째 집이다. 딱 보는 순간 혹시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봐 아내 허락도 안 받고 미리 가계약을 했다. 동네가 조용하고 방이 네 개나 됐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바깥 작업실을 얼마 전에 없앤 터였다. 아이들도 둘 다 학교가 너무 가까워졌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재개발 찬반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사 오기 전까지 그런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동안 인상만 좋다는 말을 충분히 들을 정도로 살아왔다.

커피를 내려 책상 앞에 앉았다. 마지막 새벽이다. 그래도 이 집에서 애들 둘 다 졸업하고, 둘 다 취업에 성공했다. 큰놈은 취업 재수 1년반 만이다. 아내와 나는 아직도 꿈인가 생신가 한다. 작은애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회사들은 다 떨어지더니 안 될 거라고 생각한 큰회사에 덜컥 붙었다. 우리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이젠 아빠만 잘하면 돼." 요새 우리집 유행어다. 나도 아직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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